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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제38장 대동맹(大同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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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저는 삼 년 전에 서울에 갔습니다.

— 저는 그곳에서 밤에 불이 켜진 거리를 걸었습니다. 병원에 갔고 사망 통계표를 보았습니다. 학교에 갔고 열 살짜리들이 미적분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공장에 갔고 부상자에게 연금이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조유신 28화 제38장 대동맹(大同盟) — 헤더컷

— 저는 미국인입니다. 저는 우리나라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도시를 걸으면서, 우리나라가 저들보다 나은 점을 하나도 대지 못했습니다.

— 저는 워싱턴에 돌아와 석 달을 앓았습니다.

— 그리고 답을 찾았습니다. 오늘 그것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 조선은 모든 것을 잽니다. 그것이 그들의 힘입니다. 저는 그 힘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 여러분. 재는 것에는 한 가지 성질이 있습니다. 잴 수 없는 것을 없는 것으로 만든다는 성질입니다.

— 저는 서울의 그 통계표 앞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표에는 몇 명이 무엇으로 죽었는지가 적혀 있었습니다.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그 표에는 그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사랑했는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무엇을 남기고 갔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 저는 안내하던 관리에게 물었습니다. 그것은 왜 적지 않습니까.

— 그가 대답했습니다. "잴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 저는 그 대답을 삼 년째 생각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저들보다 못 잽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배워야 하고, 오늘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은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 그러나 우리가 저들에게 배우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 사람의 존엄은 재지 못합니다. 자유는 재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땅에서 자기 말을 쓰며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재지 못합니다.

— 조선은 그것들을 없는 것으로 취급합니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장부에 그 칸이 없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저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우리 협약의 목적을 이렇게 적읍시다.

"측정될 수 없는 것을 지키기 위하여."


이 문장은 조문에 들어가지 않았다.

너무 추상적이라는 이유로 영국이 반대했고, 프랑스가 표현이 종교적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방을 나가 사십오 년을 산다.

1931년, 대서양동맹이 조선 제국에 최후통첩을 보낼 때, 그 문서의 마지막 문단은 이 문장으로 끝난다.

그리고 이백 년 뒤 조선 국립사료원의 정리관은, 봉인된 제3고에서 측명공 한주혁의 마지막 열두 장을 읽고 나서 이렇게 적게 된다.

—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오래 앉아 있었다.

— 측명공이 죽기 사흘 전에 쓴 글의 마지막 대목과, 우리의 적이 우리를 치기 위해 내건 명분이 같은 말이었다.

—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마지막 열두 장을 이백 년 동안 열지 않았던 것이다.


『대서양동맹 재무위원회 기밀보고』 1908년 — 「조선 금융 지배의 구조에 관하여」

— 우리는 지난 이십 년 동안 조선의 기술을 따라잡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상당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강철과 화학과 전기를 따라잡는 사이, 조선은 우리의 돈이 흐르는 길 자체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각하. 우리는 지금 조선의 허락 아래 서로에게 돈을 보내고 있습니다.

기술은 따라잡을 수 있다.

돈은 다르다.

기술은 알면 만들 수 있으나, 화폐는 남들이 쓸 때만 화폐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돈을 만들어도 아무도 안 쓰면 종이다.

이것이 조선 제국이 무너진 뒤에도 조선의 은행이 살아남은 이유다.

하나 — 1893년의 이십육 일

1893년 봄, 세계 금융이 무너졌다.

시작은 아르헨티나와 오스만의 동시 채무 불이행이었다. 두 나라 국채를 대량 보유한 유럽 은행 사십일 곳이 흔들렸다. 런던의 어음 시장이 얼어붙었다.

무너뜨린 것은 조선이었다. 조선 자본이 이십 년 동안 세계 각지에 뿌린 개발 차관이 부실화되면서 시작된 위기였다.

그리고 그것을 멈춘 것도 조선이었다.

1893년 6월 9일부터 7월 4일까지 이십육 일 동안, 조선중앙은행은 은 환산 사천이백만 냥을 세계 시장에 풀었다.


이 이십육 일의 의사결정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중앙은행 총재는 그때 예순한 살의 윤치용이었다. 그가 여섯째 날에 의정원에 보낸 보고서에 이런 대목이 있다.

— 신이 오늘 잉글랜드은행 총재의 서한을 받았사옵니다.

— 그 서한은 사흘 전 것이며, 내용은 융통 요청이옵니다. 액수는 은 환산 팔백만 냥이옵니다.

— 신은 이 서한을 받고 한 시진 동안 앉아 있었사옵니다.

— 백 년 전 우리는 저 나라에서 배웠사옵니다. 사십 년 전 저 나라는 우리를 오랑캐라 하였사옵니다. 십 년 전 저 나라는 우리를 세계의 적이라 규정하였사옵니다.

— 그리고 오늘 저 나라가 신에게 돈을 빌려 달라 하옵니다.

— 신은 이것이 우리의 승리라고 아뢰고 싶사옵니다. 그러나 아뢰지 않겠사옵니다.

정조유신 28화 제38장 대동맹(大同盟) — 전환컷

— 신이 이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저 나라 은행이 무너지고, 저 나라 은행이 무너지면 우리 상관 열아홉 곳이 함께 무너지옵니다. 우리 돈의 삼분의 일이 저들의 어음으로 되어 있사옵니다.

— 즉 신은 저들을 살릴지 말지를 고르는 것이 아니오라, 우리와 저들이 이미 한 몸임을 오늘 확인한 것이옵니다.

— 신이 두려운 것은 이것이옵니다. 저들도 오늘 그 사실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 한 몸인 것을 아는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아지거나 서로를 죽이려 하거나 둘 중 하나이옵니다.

— 신은 어느 쪽이 될지 모르겠사옵니다.

둘 — 무기가 된 길

『경위결제망』은 원래 편의였다.

배로 은을 실어 나르는 대신 장부에서 숫자만 옮기는 것. 석 달이 하루가 되었다.

그리고 편의는 언제나 의존이 된다.

1900년 기준, 세계 국제 거래의 이렇게 흘렀다.

경위망 경유기타
아시아 역내94%6%
아시아–유럽71%29%
유럽 역내38%62%
대서양 횡단22%78%

유럽 역내 거래의 삼십팔 퍼센트가 조선의 장부를 거쳤다.

독일 상인이 프랑스 상인에게 돈을 보내는 데 서울의 승인이 필요했다.


조선은 이 힘을 세 번 썼다.

1881년 시암. 조선 궤간 대신 영국 궤간을 채택한 직후 시암 상인이 망에서 제외되었다. 넉 달 뒤 시암이 결정을 뒤집었다.

1891년 오스만. 세관 회수 시도 직후 제외. 십일 주 만에 술탄이 퇴위했다.

1906년 페르시아. 러시아와 밀약을 맺었다는 첩보 직후 제외. 육 주 뒤 밀약이 파기되었다.

세 번 다 군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만국경위론』 증보판(1892)에 장세환이 덧붙인 문단이 이것을 요약한다.

— 예로부터 나라를 굴복시키려면 세 가지 중 하나가 필요했다. 성을 무너뜨리거나, 곡식을 끊거나, 왕을 죽이는 것이다.

— 셋 다 사람이 죽는다. 그리고 셋 다 미움을 남긴다.

— 오늘 우리에게는 네 번째가 있다. 장부에서 이름을 지우는 것이다.

— 이 방법에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우리 병사도 저들 병사도 죽지 않는다.

— 그러므로 이 방법은 도덕적으로 우월한가.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총으로 굴복시킨 나라는 자기가 정복당했음을 안다. 장부로 굴복시킨 나라는 자기가 무엇에 굴복했는지도 모른다. 그 나라 백성은 어느 날 갑자기 쌀값이 세 배가 된 이유를 모른 채 굶는다.

— 나는 이것이 더 깨끗하다고 말하지 않겠다. 나는 이것이 더 깊다고 말하겠다.

— 총은 몸에 닿고, 장부는 삶에 닿는다.

셋 — 그리고 되받았다

1919년부터 동맹은 조선의 무기를 조선에게 썼다.

방법은 조선을 망에서 빼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망이 조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동맹이 한 것은 다른 망을 만드는 것이었다.

1920년, 「대서양 어음교환소」가 설립되었다.

기술적으로 열등했다. 결제에 하루가 아니라 나흘이 걸렸고, 참여 항구가 이십일 곳뿐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완벽했다.

동맹 오국이 자국 상인에게 이 교환소 사용을 의무화했고, 조선 경위망을 쓰면 세금을 물렸다.

1920년 세계 무역 결제의 원(圜) 비중은 삼십칠 퍼센트였다.
1930년에는 십구 퍼센트가 되었다.


『조선중앙은행 내부 각서』 1930년.

— 우리가 잃은 것은 시장 점유가 아니옵니다.

— 우리가 잃은 것은 보는 눈이옵니다.

— 지난 육십 년 동안 우리는 세계 무역의 대부분을 우리 장부로 보았습니다. 어느 나라가 무엇을 얼마에 사고파는지 우리는 실시간으로 알았습니다. 우리 외교와 우리 전략이 그 위에 서 있었습니다.

— 이제 우리는 세계의 팔십 퍼센트를 보지 못하옵니다.

— 신들이 아뢰옵니다. 우리 나라의 힘은 대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남들이 우리에게 자기 사정을 알려 주는 데서 나왔사옵니다.

— 그것이 끊겼사옵니다.

— 우리는 오늘부터 눈이 어두운 나라이옵니다.

『조선중앙은행 내부 각서』 193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