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6부 경위(經緯)
24화제33장 만국경위론(萬國經緯論)
제2장부터가 문제다.
— 조선이 우월하지 않다면, 조선의 앞섬은 무엇으로 설명되는가.

— 답은 하나다. 조선은 잰다.
— 잰다는 것은 세 가지를 뜻한다. 첫째, 사실을 사실대로 적는 것. 둘째, 적은 것을 감추지 않는 것. 셋째, 적은 것이 자기 뜻과 어긋날 때 자기 뜻을 버리는 것.
— 이 셋을 하는 집단은 반드시 이긴다. 하지 않는 집단은 반드시 진다. 예외를 나는 본 적이 없다.
— 그리고 이 셋은 재능이 아니다. 이것은 제도다. 배울 수 있고, 옮겨 심을 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다.
— 그러므로 나는 다음을 주장한다.
— 재는 것은 조선의 것이 아니다. 재는 것은 인류의 것이다.
이 문장이 이 책이 세계를 삼킨 이유다.
제3장이 결론이다.
— 그러면 왜 우리가 다스려야 하는가.
— 세상은 지금 하나로 얽히고 있다. 봄베이의 목화값이 리버풀에서 정해지고, 자바의 흉년이 광저우의 쌀값을 올린다. 전신이 놓이고 배가 빨라지면서 이 얽힘은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 얽힌 세계에서는 한 나라의 무능이 그 나라에서 끝나지 않는다.
— 청이 자기 창고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면, 굶는 것은 청의 백성만이 아니다. 오스만이 장부를 쓰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은 오스만만이 아니다. 어느 항구가 역병을 신고하지 않으면, 그 역병은 세 대륙을 돈다.
— 예로부터 다스림의 근거는 혈통이었고, 그다음은 신의 뜻이었고, 그다음은 백성의 뜻이었다.
— 나는 네 번째를 말한다. 감당할 수 있는 자가 다스려야 한다.
— 이것은 민족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다. 만주인이 재는 법을 익히면 만주인이 다스리면 된다. 영국인이 우리보다 잘 재게 되면 우리가 물러나면 된다. 나는 그날이 오면 물러나겠다고 여기에 적어 둔다.
— 다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재지 못하는 자에게 세계를 맡기는 것은 죄악이다.
— 나는 이것을 경위(經緯)라 부른다. 세로줄과 가로줄이다. 세계에 눈금을 긋는 일이다.
이 책이 왜 무서운가.
『탈아론』이나 『백인의 짐』 같은 글은 반박하기 쉽다. 그것들은 혈통을 말하기 때문에, 혈통이 근거가 못 된다는 것만 보이면 무너진다.
『만국경위론』은 혈통을 말하지 않는다.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우리보다 잘하면 네가 다스려라.
그리고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무인년 이후 삼십 년 동안, 조선은 정말로 그렇게 했다.
경위권 안에서 관직은 시험으로 뽑혔고, 시험은 국적을 묻지 않았다.
기묘년(1879), 조선 제국 과학원에 처음으로 외국인 정원(正員)이 임명되었다. 나가사키 출신 스물아홉의 물리학자였다.
병술년(1886)에는 봄베이 출신 수학자가 계산원 부제조가 되었다.
계사년(1893)에는 자바 출신 화학자가 화학원의 열두 번째 분원장이 되었다.
무술년(1898) 통계를 보면, 조선 제국의 고급 기술 관료 중 조선 본토 출신이 아닌 자가 삼십사 퍼센트였다.
같은 해 영국 인도 정부의 고급 관료 중 인도인 비율은 일 퍼센트였다.
그리고 이것이 조선 제국이 무너지기 어려웠던 이유다.
식민지에는 늘 협력자가 있다. 그러나 대개 그들은 자기가 협력자임을 안다. 그들은 부역하는 대가로 재산과 지위를 얻고, 밤에는 부끄러워한다.
조선 제국의 협력자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가 옳은 편에 섰다고 믿었다. 그리고 상당 부분 그것은 사실이었다. 자바의 화학자는 조선 아래에서 세계 최고의 실험실을 얻었다. 봄베이의 수학자는 영국 아래에서는 평생 서기였을 것이다.
경위권은 능력 있는 자에게는 정말로 열려 있었다.
능력이 없는 자에게만 닫혀 있었다.
그리고 세상 사람의 구할 구푼은 능력이 없다.
일본이 그 증거다.
원래의 역사에서 일본은 조선을 삼켰다. 이 세계에서는 반대가 되었다.
임오년(1882) 조선-일본 전쟁, 갑신년(1884) 보호국화, 을사년(1905) 병합.
그러나 그 뒤의 일본은, 이 세계의 역사가들이 오래 곤혹스러워한 사례다.
일본은 저항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십오 년쯤 저항하다 그만두었다. 그리고 조선의 어떤 지방보다도 빠르게 경위권의 규범을 흡수했다.
기해년(1899) 통계에서 인구 대비 기술 관료 배출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조선 본토가 아니라 일본 서부였다.
경위권의 식민지 행정을 실제로 굴린 것도 일본인이었다. 인도차이나 총독부의 국장급 열아홉 중 열하나가 일본인이었다. 보르네오 고무 농원의 관리 체계를 설계한 것도, 남양 인광석 채굴의 노무 관리를 만든 것도 일본인 기술관료였다.
그들이 가장 유능했고, 가장 엄격했고, 현지인들이 가장 두려워했다.

『나가사키 고등공업학교 졸업식 훈사』 계묘년(1903). 교장 아오키 겐이치로(靑木源一郞).
아오키 겐사이의 증손이다.
— 제군.
— 제군은 오늘 이 학교를 떠나 경위권 각지로 간다. 그중 절반 이상이 조선 본토가 아닌 곳으로 갈 것이다.
— 제군에게 한 가지를 말해 두겠다.
— 우리 일본은 팔십 년 전에 졌다. 나의 증조부는 그 패배를 보았고, 조선을 미워하며 삼십 년을 살았다. 그분이 남긴 편지가 우리 집에 있다.
— 그분은 이렇게 쓰셨다. 우리가 조선만큼 강해지면 조선이 우리에게 한 것을 다른 누구에게 하게 될 것이라고.
— 제군. 그 편지는 옳았다.
— 오늘 제군은 조선인보다 더 조선적인 관리가 되기 위해 이 학교를 나선다. 제군은 자바에서, 보르네오에서, 인도차이나에서, 팔십 년 전 우리가 당한 일을 그들에게 하게 될 것이다.
— 나는 그것을 막을 수 없다. 나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자격도 없다. 나 자신이 이 학교의 교장이기 때문이다.
— 다만 제군에게 하나만 부탁하겠다.
— 제군이 그 일을 할 때, 제군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 하라.
— 모르고 하는 자는 짐승이고, 알고 하는 자는 사람이다. 짐승은 용서받고 사람은 용서받지 못한다.
— 나는 제군이 용서받지 못하기를 바란다.
『삼척 격물소 제칠실 일지』 무오년(1858) 삼월 이십일
오늘 최문경 국원이 감광판을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검게 된 것을 발견했다. 서랍은 닫혀 있었고 빛이 들지 않았다. 국원이 서랍을 뒤져 보니 지난달 시험하던 유리관이 함께 들어 있었다. 국원이 이 일을 감추지 않고 보고했다. 원인을 모르겠으므로 그대로 적어 둔다.
조선이 원자에 이른 길은 유리에서 시작한다.
우연이 아니다. 필연이다.
전자와 방사선과 원자핵을 보려면 진공이 있어야 하고, 진공을 만들려면 유리를 불 줄 알아야 한다. 유럽이 이 분야에서 늦었던 이유의 절반은 이화학용 경질 유리를 다룰 수 있는 장인이 몇 나라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에는 삼척이 있었다.
그리고 삼척에는 최씨 집안이 있었다.
최문경(崔文卿)은 최연의 오라비의 손녀다.
계묘년(1843)에 태어났고, 삼척 격물소 유리방에서 자랐으며, 열한 살에 유리를 불기 시작했고, 열여섯에 국원이 되었다.
그녀의 집안은 조선에서 진공관을 불 수 있는 유일한 집안이었다. 관을 얇고 고르게 불고, 안에 금속을 심고, 심은 자리를 새지 않게 봉하는 일은 도면으로 전할 수 없었다. 손이 알아야 했다.
무오년(1858), 열여섯의 최문경은 유리관 안의 공기를 뽑고 양쪽에 금속을 심어 강한 전기를 흘리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낸 과제가 아니었다.
『만물지서』 중권 제십칠권 「미분」의 제5항이 낸 과제였다.
『미분』은 갑오년에 봉해진 뒤 스물네 해 동안 열리지 않았다.
읽으려면 의정원 과학위원회 다섯 명 중 셋의 서명이 필요했다.
무술년(1838)에 처음 열렸고, 첫 항목부터 순서대로 과제가 되었다. 제1항 원자의 크기 재기는 팔 년이 걸렸다. 제2항 원소의 무게 규칙 찾기는 십일 년이 걸렸다.
제3항 — 같은 종류인데 무게가 다른 것이 있다. 이것을 반드시 확인하라. 이것이 뒤에 가장 중요해진다 — 은 그때 조선의 기술로 확인이 불가능했다. 보류되었다.
제5항이 최문경의 몫이었다.
— 어떤 물질은 가만히 두어도 빛 아닌 빛을 낸다. 그 빛은 종이를 지나고 살을 지나고 뼈에서 멈춘다. 검은 종이로 싼 감광판 위에 그런 물질을 올려 두라. 하룻밤이면 안다.
문제는 "그런 물질"이 무엇인지 적혀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조선은 십오 년 동안 온갖 광석을 감광판 위에 올려놓고 밤을 보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서랍이 답을 주었다.
검게 된 감광판 옆에 있던 것은 광석이 아니라 그녀가 만든 진공관이었다.
관에 전기를 흘리면 관 끝에서 무언가가 나온다. 그것이 감광판을 검게 만들었다.
그녀는 그것을 투기(透氣) 라고 이름 붙였다. 꿰뚫는 기운이라는 뜻이다.
무오년 사월 초하루, 그녀는 진공관과 감광판 사이에 자기 왼손을 넣었다.
한 시진 뒤 판을 현상했다.
뼈가 찍혀 있었다.
이 사진은 지금도 남아 있다. 조선 국립사료원 제1고 소장.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다.
열여섯 살 소녀의 왼손 뼈. 손가락 네 개와 엄지. 넷째 손가락에 반지가 있어 그 자리가 하얗게 비어 있다.
같은 사진을 뢴트겐이 찍는 것은 1895년이다.
서른일곱 해.
같은 사진을 뢴트겐이 찍는 것은 1895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