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4부 철혈(鐵血)
16화제22장 열어야 하는가
한주혁은 그때 여든넷이었다.
그는 삼 년 전부터 삼척을 떠나 한양 근교에 살고 있었다. 눈이 나빠 글을 읽지 못했고, 왼쪽 다리를 절었으며, 하루에 두 시진 이상 깨어 있지 못했다.

그날 그는 가마에 실려 인정전에 왔다.
의장이 물었다.
"측명공. 앉아서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서겠습니다."
그는 섰다. 서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리고 그가 그날 한 말이 회의록에 그대로 남아 있다. 백 년 뒤에 봉인이 풀렸을 때, 이 발언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가장 적게 이해된 글이 된다.
— 나는 오늘 열자고 말하러 왔소.
— 팔자는 것이오. 유리도, 강수도, 시멘트도, 전신도, 총도 팔자는 것이오. 만드는 법까지 팔자는 것이오. 값을 받고 가르쳐 주자는 것이오.
— 여러분이 무슨 표정을 짓고 계신지 나는 눈이 어두워 보이지 않소. 그러나 짐작은 가오.
— 세 가지 이유를 말하겠소.
— 첫째. 감출 수 없기 때문이오.
— 지식은 물건이 아니오. 물건은 창고에 넣고 자물쇠를 채우면 되지만 지식은 그렇지 않소. 한 번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것은 절반쯤 유출된 것이오. 영국 선장이 우리 마을에서 여덟 시진을 보고 갔소. 그가 가져간 것은 도면이 아니오. 그가 가져간 것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 하나요. 그 하나면 충분하오. 나는 그것을 아오. 내가 여러분에게 준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오.
— 나는 여러분에게 설계도를 준 적이 거의 없소. 나는 여러분에게 "그것은 가능하다"고 말했을 뿐이오. 그리고 여러분은 삼십칠 년 만에 여기까지 왔소. 영국은 여러분보다 사람이 많고 돈이 많고 쇠가 많소. 여러분이 삼십칠 년 걸린 것을 그들은 이십 년에 할 것이오.
— 둘째. 팔면 값을 받기 때문이오.
— 우리는 지금 유황이 없고 고무가 없고 역청탄이 없소. 그것들은 남의 땅에 있소. 우리에게는 그것을 살 은이 없소.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들이 목말라 하는 것이 있소.
— 팔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빼앗으러 가야 하오. 우리는 이미 대마도에서 한 번 그렇게 했소. 나는 그날을 잊지 않았소.
— 셋째, 그리고 이것이 가장 중요하오.
— 감추면 우리는 무서운 나라가 되기 때문이오.
—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처지가 무엇인지 아시오? 강한 나라가 아니오. 약한 나라도 아니오. 혼자만 강하고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는 나라요.
— 그런 나라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오. 그리고 두려움은 반드시 동맹을 낳소. 서로 백 년을 싸운 나라들도 더 무서운 것 앞에서는 손을 잡소. 우리가 감추면 감출수록 그들은 우리를 더 무서워할 것이고, 무서워할수록 더 빨리 뭉칠 것이오.
— 그리고 여러분, 그들이 뭉치면 우리는 못 이기오.
— 우리 백성이 이천만이오. 저들은 다 합치면 삼억이오. 우리가 아무리 앞서도 열다섯 배를 이기지는 못하오. 우리가 앞선 것은 시간이지 크기가 아니오.
— 그러므로 우리가 살 길은 하나요. 저들이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게 하는 것이오. 팔고, 가르치고, 같이 쓰고, 우리 없이는 세상이 돌아가지 않게 만들되 우리가 없어져야 세상이 편해지는 나라는 되지 않는 것이오.
—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오. 나는 다른 방법을 모르오.
— 나는 여러분이 반대하리라는 것을 아오. 반대할 것이오. 사람은 앞선 것을 손에 쥐면 놓지 못하오. 나도 그랬소. 나는 삼십칠 년 동안 이 나라의 담을 높이는 일을 했고, 오늘에야 그 담이 우리를 가두고 있다는 것을 아뢰오.
— 나는 늙었고 곧 죽소. 그러니 여러분은 오늘 내 말을 노인의 겁 많은 소리로 여기시오. 그렇게 여기고 표를 던지시오.
— 다만 한 가지만 회의록에 남겨 주시오.
— 나는 오늘, 열자고 했소.
토론이 여섯 시진 계속되었다.
반대 논거는 셋이었고, 셋 다 강력했다.
첫째, 통상국 부제조 오정환. — 팔면 이십 년 안에 따라잡히옵니다. 우리가 앞선 것이 이십 년인데, 이십 년을 팔면 남는 것이 영(零)이옵니다.
둘째, 광무국 총관 대리. — 우리가 팔 수 있는 것은 물건이지 나라가 아니옵니다. 저들이 우리 물건을 사서 우리를 치는 데 쓰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사옵니까.
셋째가 결정적이었다.
의원 장세용(張世鎔), 장만복의 손자. 그때 마흔둘이었고, 뒤에 『만국경위론』을 쓰게 될 장세환의 아버지다.
그가 일어섰다.
"측명공께 여쭙겠습니다."
"…말씀하시오."
"공께서는 저들이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게 하자 하셨습니다."
"그렇소."
"어떻게 해야 무서워하지 않습니까."
"…"
"공께서 아시는 그 세계에서,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무서워하지 않게 된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나눠 주면 됩니까? 친절하면 됩니까?"
한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공께서는 우리에게 백 년 뒤에 우리가 먹힌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서 먹혔습니까. 우리가 남을 무섭게 해서 먹혔습니까?"
"…"
"아닙니다. 우리가 약해서 먹혔습니다."
장세용이 좌중을 둘러보았다.
"측명공의 말씀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공께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 두려움 중 하나를 고르라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는 저들이 우리를 무서워해서 뭉치는 것이고, 하나는 저들이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아서 삼키는 것입니다."
"…"
"저는 뭉치는 쪽을 고르겠습니다. 최소한 그쪽은 우리가 살아 있어야 벌어지는 일이니까요."

표결.
개방 삼십일. 봉쇄 육십. 기권 셋.
『금수품목령(禁輸品目令)』이 그해 십일월에 반포되었다.
수출 금지 품목은 열아홉이었다. 강수 제조법, 정밀 공작기계, 전신 부호와 장비, 강선 절삭기, 광학 유리 배합, 정밀 측정기의 원기, 그리고 『만물지서』 전체.
수출 허용 품목은 완제품에 한했다. 유리는 팔되 만드는 법은 팔지 않는다. 총은 팔되 총열을 깎는 기계는 팔지 않는다.
『삼척약조』 제5조 — 바깥에 말하지 아니한다 — 가 삼십칠 년 만에 한 골짜기를 벗어나 나라 전체의 법이 되었다.
회의가 끝난 뒤, 서유구가 한주혁을 가마까지 부축했다.
예순여덟이었다. 그도 늙어 있었다.
"…총재."
"…"
"오늘 지셨습니다."
한주혁이 웃었다.
"…아오."
"…"
"부총재. 나는 오늘 진 게 아니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오늘 처음으로 이 나라 사람이 됐소."
"…"
"삼십칠 년 동안 나는 이 나라에 온 손님이었소. 내 말이 다 통했소. 내가 말하면 그대로 되었소. 그게 편했고, 그래서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한 게 아니라 다뤘던 거요."
가마가 흔들렸다.
"오늘 나는 표결에서 졌소. 진 사람만이 그 나라 사람이오."
서유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주혁이 덧붙였다.
"…그리고 부총재. 나는 저 사람들이 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오."
"…"
"그게 제일 무섭소."
『만물지서』 중권 제십칠권 「미분(未分)」 첫머리
이 권은 내가 쓰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쓰지 않기로 열한 번 결심했고 열한 번 다 어겼다. 마지막 결심은 어젯밤이었다. 오늘 아침 나는 다시 붓을 들었다. 그 이유를 적어 둔다. 내가 이것을 쓰지 않아도 언젠가 누가 알아낸다. 그때 알아내는 자가 이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알아내면, 그것이 더 위험하다.
한주혁의 마지막 두 해는 받아쓰기로 채워졌다.
여든넷의 그는 글자를 볼 수 없었다. 삼척에서 만든 안경 도수가 더 나올 수 없었다. 그가 스물세 번째 안경을 벗어 놓으며 이렇게 말한 것을 이경묵이 적어 두었다.
— 이제 됐소. 이 눈으로 서른아홉 해를 봤으면 됐소.
그는 젊은 국원 넷을 곁에 두었다. 하나는 받아 적고, 하나는 적은 것을 읽어 주고, 하나는 그림을 그리고, 하나는 셈을 검산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만물지서』 중권과 하권이다.
그리고 그 안에 세 권이 따로 있다.
첫째 — 제십칠권 「미분(未分)」
나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이다. 원자(原子)를 조선어로 옮긴 말이다.
이 권을 쓸 것인가를 두고 그는 여덟 달을 앓았다.
그가 아는 것은 대학 학부 수준의 원자물리였다. 그러나 그 수준으로도 충분히 위험했다. 그는 물질이 나뉘지 않는 알갱이로 되어 있고, 그 알갱이 안에 다시 알맹이가 있고, 그 알맹이가 쪼개지면 상상할 수 없는 열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문제는 그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아는 것은 결론이었다. 결론에 이르는 백오십 년의 실험을 그는 하나도 재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방식을 바꿨다.
그는 답을 적지 않고 질문의 순서를 적었다.
『미분』 목차
一. 물질을 반으로 자르기를 계속하면 어디서 멈추는가. 멈춘다면 그 알갱이는 얼마나 작은가. 재는 법을 적는다.
二. 알갱이는 몇 종류인가. 종류마다 무게가 다르다. 그 무게에 규칙이 있다. 규칙을 찾는 법을 적는다.
三. 같은 종류인데 무게가 다른 것이 있다. 이것을 반드시 확인하라. 이것이 뒤에 가장 중요해진다.
四. 알갱이는 속이 비어 있다. 얇은 금박에 무언가를 쏘아 보내면 대부분 그냥 지나가고 아주 드물게 튕겨 나온다. 이 실험을 반드시 하라.
五. 어떤 물질은 가만히 두어도 스스로 빛 아닌 빛을 낸다. 그 빛은 종이를 지나고 살을 지나고 뼈에서 멈춘다. 검은 종이로 싼 감광판 위에 그런 물질을 올려 두라. 하룻밤이면 안다.
六. 그 빛을 내는 물질은 무게가 줄어든다. 무엇이 빠져나가는가.
七. 알갱이 속의 알맹이에 전기를 띠지 않은 것이 있다. 이것을 찾아라. 이것이 열쇠다.
八. 전기를 띠지 않은 것은 다른 알갱이 속으로 그냥 들어간다. 무거운 알갱이에 그것을 넣으면 알갱이가 둘로 쪼개진다. 쪼개지면서 전기를 띠지 않은 것이 두어 개 더 튀어나온다.
九. 그러므로 그것들이 다시 다음 알갱이를 쪼갠다. 그다음이 넷, 그다음이 여덟이 된다.
十. 여기서 멈추어 이 다음 문장을 세 번 읽어라.
그리고 열 번째 항목 아래에 그가 직접 붓을 잡고 쓴 문장이 있다. 손이 떨려 글자가 크다.
— 여기서부터 나오는 힘은 화약과 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콩 한 알만 한 것이 한 고을을 없앤다.
— 이것을 읽는 자에게 나는 명령할 수 없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부탁한다.
— 이 열 번째까지 오는 데 나는 백오십 년이 걸릴 것이라 짐작한다. 백오십 년 뒤의 조선이 지금의 조선보다 나은 나라이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이 권을 태우라.
— 나은 나라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그 나라가 자기가 죽인 사람의 수를 정확히 알고 있고, 그 수를 백성에게 숨기지 않는다면 나은 나라다.
— 그것 하나만 보라.
그리고 열 번째 항목 아래에 그가 직접 붓을 잡고 쓴 문장이 있다. 손이 떨려 글자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