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1부 낙하(落下)
1화서장 — 삼백 년 뒤의 서문
『측명공 한주혁 유고 교주본(校註本)』 편찬 서문
유신(維新) 이백삼십이년 삼월, 국립사료원 봉인문서 제3고 개봉에 부쳐

이 문서를 여는 데 이백 년이 걸렸다.
정확히 말하면 이백 년 동안 열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 결정을 매 세대 갱신한 사람들이 있었으며, 갱신을 갱신하다 보니 왜 닫아두었는지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다. 봉인은 대개 그런 식으로 유지된다. 악의가 아니라 관성으로.
내가 이 일을 맡게 된 것은 재작년 겨울, 국립사료원 제3고의 항온 설비가 고장 나면서였다. 지하 사고(史庫)의 습도가 이레 동안 규정치를 넘겼고, 종이가 상하기 전에 전부 꺼내 복사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나는 그때 삼십칠 세의 하급 교열관이었고, 남들이 기피하는 제3고를 배정받았다. 제3고는 '측명공 관련 미공개 문서'로만 분류되어 있었다. 목록조차 없었다.
일곱 궤짝이었다.
여섯 궤짝은 예상대로였다. 삼척 시절의 업무 일지, 자재 수불부, 인부 명부, 실패한 가마의 온도 기록. 이미 활자화된 『삼척일지』의 초고와 대조하니 삭제된 부분이 상당했는데, 대부분은 사망자 명단이었다. 우리가 배운 역사에서 삼척 과학혁신기구는 조선을 구한 성전(聖殿)이다. 그 성전에서 서른아홉 해 동안 몇 사람이 죽었는지는 배우지 않는다. 나는 세었다. 사천육백여든세 명이었다.
일곱 번째 궤짝에는 한 권이 들어 있었다.
『만물지서(萬物之序)』 하권 종장(終章). 열두 장. 측명공이 죽기 사흘 전에 쓴 것이고, 그가 죽은 다음 날 봉인된 것이다. 봉인지에는 두 사람의 수결이 있었다. 하나는 그의 제자였던 자의 것이고, 하나는 그 제자를 처형한 자의 것이었다. 둘이 같은 문서를 함께 봉했다는 사실이 나는 오래 이해되지 않았다.
읽었다.
그리고 이 서문을 쓰는 데 다시 이 년이 걸렸다.
우리는 측명공 한주혁을 이렇게 배운다. 하늘이 조선을 가엾이 여겨 보낸 사람. 정조대왕께서 알아보시어 삼척에 기구를 세우게 하시니, 사십 년 만에 조선이 만국의 앞에 섰다. 유신의 아버지. 만천명월의 신하.
교과서의 그 문장들은 대체로 사실이다. 사실이라서 문제다.
제3고의 문서들이 보여주는 것은 다른 종류의 사실이다. 그는 하늘에서 온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마지막까지 설명하지 못했고, 설명하려는 시도를 스무 해쯤 지나서 포기했다. 그는 예언자가 아니었다. 그가 아는 미래는 그가 떠나온 세계의 미래였고, 그가 첫 삽을 뜬 순간 그 미래는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가 아는 그 나라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이 사료집은 그가 만들려던 것과 우리가 만든 것 사이의 거리에 관한 기록이다. 그 거리는 짧지 않다. 나는 이 거리를 좁혀 설명하려는 유혹을 여러 번 느꼈고, 그때마다 사천육백여든셋이라는 숫자를 떠올렸다. 좁혀서 설명하는 것이 지난 이백 년 동안 우리가 해온 일이다.
한 가지만 미리 적어둔다.
옛 서양력으로 셈하면 올해는 이천이십칠년이다. 측명공이 태어난 세계에서 그가 사라진 바로 그 해다. 그는 자신이 떠나온 해를 여러 번 적어두었다. 어느 문서에서는 담담하게, 어느 문서에서는 취한 사람처럼.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그가 사라진 해에 서 있다.
그가 살던 세계에서 이 해가 어떤 해였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다. 그가 떠난 순간 그 세계도 함께 사라졌는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여전히 굴러가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종종 이런 상상을 한다. 그 세계의 어느 연구소에서,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 출근을 했다고. 조선이 유럽을 넘지 않았고 삼척에 아무것도 세워지지 않았고 천사백열아홉 명이 살아 있는 세계에서.
그 세계가 우리보다 나은 세계였는지는, 그의 마지막 열두 장을 다 읽고 나서도 나는 판단하지 못하겠다.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유신 이백삼십이년 삼월
국립사료원 제3고 정리관
최은서(崔恩瑞) 삼가 적음
『삼척부 첩보(牒報)』 을묘년 오월 십사일
부내면 도계리 화전민 김덕수 등 네 명이 고하기를, 초아흐렛날 저물녘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산에서 내려왔다 하옵니다. 머리에는 유리를 두 개 걸었고 손에서 불을 냈다 하옵니다. 사람의 말을 하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반이요,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반이라 하옵니다. 마을에서는 독각귀(獨脚鬼)라 하여 붙잡아 묶어두었사옵니다. 처분을 기다리옵나이다.
한주혁이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냄새였다.
젖은 흙과 썩은 잎, 그리고 그 밑에 깔린 무언가 비린 것. 그는 잠시 자기가 야외 실험장의 배수로에 쓰러진 줄 알았다. 그런 일은 실제로 있었다. 삼 년 전 여름, 사흘을 새우고 냉각탑 옆에서 쓰러졌을 때 눈을 뜨니 잔디밭이었다. 그때도 흙냄새가 났다.

그러나 그때는 매미가 울지 않았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왼쪽 어깨가 뻐근했고 손바닥이 쓸려 있었다. 안경은 다행히 얼굴에 붙어 있었다. 그는 안경을 벗어 옷자락에 닦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고, 다시 썼고,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산이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산이었다.
그가 일하던 연구단지는 대전 외곽이었고, 뒤로 낮은 야산이 있었다. 그 산에는 등산로가 있고 계단이 있고 페트병이 굴러다니고 스무 걸음마다 밧줄 난간이 있었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것은 그런 산이 아니었다. 나무들이 굵었다. 굵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밑동 둘레가 사람 두 팔로 감기지 않는 소나무들이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 사이로 아무 길도 나 있지 않았다.
그는 시계를 보았다. 열두 시 사십칠 분. 초침은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기계식이었으므로.
휴대전화를 꺼냈다. 신호 없음. 그는 그것을 세 번 확인했다. 세 번째에 화면을 위로 쓸어 재부팅을 시도했고, 부팅되는 동안 자기 손이 떨리는 것을 발견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지하 3층 제2실험동이었다. 초전도 자석 냉각 계통에 이상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내려갔다. 원래 그가 내려갈 일이 아니었다. 단장이 직접 갈 일은 아니라고 부단장이 말렸고, 그는 "내가 설계했으니까 내가 본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이 자기 인생 마지막 문장이 될 줄은 몰랐다. 계기판을 들여다보는데 숫자가 이상했다. 자기장 값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세 자리까지 읽었고, 그 뒤로는 아무것도 없다.
한주혁은 백 미터쯤 걸어 능선에 올랐다. 그리고 동쪽을 보았다.
바다가 있었다. 아주 멀리, 산줄기 세 겹 너머로 푸른 띠가 보였다. 동해였다. 그는 방향 감각이 좋은 편이었고, 태양의 위치와 그림자 길이로 대략의 시각을 다시 확인했다. 시계와 맞았다. 정오를 조금 지난 시각.
그러니까 여기는 대전이 아니었다. 동쪽에 바다가 저렇게 가까운 곳은 강원도 동해안이었다.
그는 이백 킬로미터를 이동한 셈이었다.
그리고 능선 아래 골짜기를 내려다보았을 때, 그는 자기가 이동한 것이 거리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대여섯 줄기. 골짜기 안쪽 비탈에 나무를 베고 태운 자리가 있었고, 그 옆에 지붕이 있었다. 지붕은 볏짚이었다. 그 옆에 사람이 있었다. 흰 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에 무언가를 얹고 있었다. 그 사람은 소를 몰고 있었다.
한주혁은 이십 분 동안 그 자리에 서서 그것을 보았다.
민속촌이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그다음에는 사극 촬영장이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로는 자기가 뇌졸중을 일으켰고 지금 환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지막 가설이 가장 그럴듯하다고 판단했다. 마흔일곱이면 이르지만 없는 일은 아니었고, 그는 고혈압 약을 먹고 있었으며, 사흘을 못 잤다.
그래서 그는 검사를 하기로 했다.
환각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방법은, 그가 아는 한, 예측을 세우고 검증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서 세 가지를 관찰하기로 했다. 첫째, 소나무의 수령 분포. 인공림이면 균질하고 원시림이면 불균질하다. 둘째, 골짜기 물의 탁도. 셋째, 사람들의 치아.
세 번째가 결정적이었다.
그를 처음 본 사람은 김덕수의 둘째 아들 김돌쇠, 열네 살이었다.
돌쇠는 물을 길러 계곡에 내려왔다가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검은 옷이었다. 조선에는 없는 형태의 검은 옷이었고, 목까지 단추가 촘촘히 달려 있었으며, 소매 끝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물려 있었다. 얼굴에는 두 개의 둥근 유리가 걸려 있었다. 유리는 값비싼 물건이었다. 돌쇠는 유리를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삼척부 관아 문루에 걸린 자명종에 유리가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것을 얼굴에 걸고 있었다.
돌쇠는 물동이를 놓쳤다.
그 소리에 사내가 돌아보았다. 얼굴이 하얗지도 않고 붉지도 않았다. 조선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머리를 상투로 틀지 않았다. 짧았다. 중처럼 민 것도 아니고 그냥 짧았다. 상투가 없는 사내를, 돌쇠는 본 적이 없었다.
사내가 무어라고 말했다. 돌쇠는 반쯤 알아들었다.
"여기가… 어디… 요?"
말투가 이상했다. 억양이 하나도 붙지 않은, 노래하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조선말이기는 했다.
돌쇠는 도망쳤다.
말투가 이상했다. 억양이 하나도 붙지 않은, 노래하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조선말이기는 했다.